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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기 아침에 전화가 오면 가끔 받기가 겁날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못 나갈 것 같습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무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는 날은 정말 속이 탔습니다.

 

평소라면 한 사람이 빠져도 다른 직원이 빈자리를 메울 수 있지만, 하루 1~2만 개를 만들어 출고해야 하는 성수기에는 한 사람의 빈자리도 작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날 작업할 물량과 인원을 맞춰놓았는데 한 명이 빠지면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원래 그 사람이 하던 일이 비고, 작업 순서가 하나씩 밀립니다. 실제로 출고가 늦어지고 결국 납품이 취소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화가 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성수기가 다 끝난 뒤에는 화나는 일보다 더 씁쓸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달 동안 같이 정신없이 일하고, 전화받고, 사고 막고, 납품시간 맞추면서 버틴 직원이 어느 날 그만두겠다고 할 때였습니다. 특히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일을 가르치고 한 시즌을 같이 보낸 신입 직원이 떠난다고 하면 마음이 더 그랬습니다.

 

무단결근한 직원 때문에 속이 타는 것과, 같이 고생한 직원이 떠나서 씁쓸한 것은 전혀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다이어리 성수기를 여러 번 보내면서 나는 일이 많아서 힘든 것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또 사람 때문에 버티는 때가 더 많았습니다.

 

무단결근 한 명이 납품까지 흔들었습니다

성수기에는 직원 한 명이 갑자기 빠지는 것도 큰일입니다. 미리 사정을 이야기하고 쉬는 경우라면 어떻게든 사람을 다시 배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 무단결근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그날 생산할 물량에 맞춰 사람을 배치해 놓았는데 한 명이 빠지면 다른 곳에서 사람을 빼와야 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쪽 작업이 늦어집니다. 평소 같으면 조금 늦게 끝내면 될 일이지만 성수기에는 다음 작업과 출고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직원 한 명이 빠지면서 작업이 늦어지고 결국 납품을 취소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매일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량 주문에서는 1년에 한두 건 정도 납품을 못 맞추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붙어서 일했는데 마지막에 납품을 못하게 되면 허탈했습니다. 나는 무단결근 자체도 싫었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같이 출근한 직원들이 더 힘들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빠진 사람 몫까지 해야 했고, 출고시간이 다가오면 쉬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그친다고 일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장 분위기가 한번 가라앉으면 같은 사람들이 일해도 작업량이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오늘 이 물량만 끝내보자며 분위기가 살아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수기에는 한 명이 안 나온다는 사실보다 그 빈자리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의 마음까지 무너지는 것이 더 무서웠습니다.

 

기계는 고장 나면 고치면 됩니다. 부족하면 다른 기계를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한 명의 빈자리는 숫자 하나를 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현장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하루 1~2만 개, 사람의 사기가 작업량을 바꿨습니다

다이어리 성수기는 보통 10월 말부터 11월까지가 가장 정신없었습니다. 특히 11월에는 하루 평균 1만 개에서 많게는 2만 개 정도를 제작하고 출고했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기존 직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현장에 60~70명 정도의 아르바이트 인력이 들어왔고, 기존 직원까지 합치면 80~90명 가까운 사람이 움직일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일이 더 잘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같은 인원으로 같은 제품을 작업해도 어떤 날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났고, 어떤 날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오래 지켜보니 사람들의 사기가 작업량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분위기가 좋은 날에는 서로 자기 일이 끝나면 옆 사람 일을 거들었습니다.

 

오늘 물량을 빨리 끝내보자는 분위기가 생기면 작업 속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습니다. 반대로 한두 가지 문제가 생기고 사람들이 지쳐버리면 같은 인원이 있어도 작업량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체감상 하루 작업량이 두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느낀 날도 있었습니다.

다이어리 성수기 주문과 납품 상담을 처리하던 실제 사무실

현장만 힘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주문과 납품 문의 전화가 계속 들어왔습니다. 상담하는 직원이 전화기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통화할 정도로 몰릴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전화벨을 듣다 보니 전화가 울리지 않는데도 전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와이프가 웃으면서 내가 자다가 잠꼬대로 “네~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낮에 얼마나 같은 말을 반복했으면 잠을 자면서까지 전화를 받았을까 싶어 나도 웃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납품을 끝냈다는 보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버틴 직원들에게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숨 돌리겠다 싶은 바로 그때, 또 다른 씁쓸한 일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성수기를 같이 버틴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였습니다.

 

같이 버틴 직원이 떠날 때가 더 씁쓸했습니다

성수기가 끝나면 나는 이제 한숨 좀 돌리겠다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두 달 동안 밀어붙였던 납품도 거의 끝나고 전화도 조금씩 줄어듭니다. 현장도 사무실도 다시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쯤이면 사무실 직원 중 한두 명이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매년 꼭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몇 번 반복해서 겪다 보니 성수기가 끝날 무렵이면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가려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특히 신입 직원이 그만둘 때는 마음이 더 씁쓸했습니다. 사람 한 명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처음 들어와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하나씩 가르치고, 가장 힘든 성수기를 같이 보냈습니다. 이제 전화도 제법 받고 자기 일을 찾아서 할 정도가 됐는데 그때 그만두겠다고 하면 허탈했습니다.

 

그렇다고 직원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는 감당할 만했던 일이 성수기 두 달 동안 한꺼번에 몰립니다. 전화는 계속 울리고 납품시간은 정해져 있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 두 달을 처음 겪은 신입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바쁜 두 달에 맞춰 숙련된 인력을 충분히 두면 좋겠지만, 그 두 달을 위해 나머지 열 달 동안 필요 이상의 인원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성수기가 시작된 뒤 사람을 뽑으면 일을 가르치는 동안 시즌이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 문제는 매년 숙제처럼 남았습니다. 기계를 더 놓거나 작업 순서를 바꾸는 것처럼 답이 딱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직원은 한 시즌을 겪고 떠났고, 어떤 직원은 몇 번의 성수기를 같이 보내면서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됐습니다.

 

 

무단결근을 한 직원에게는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화보다 힘든 두 달을 같이 버틴 직원이 떠났을 때의 씁쓸함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성수기가 끝났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과 다시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했고, 떠난 사람의 빈자리도 또 채워야 했습니다. 힘들고, 그다음 그 힘든 일을 처리하면 또 보람을 느끼고. 그러면서 사는 게 삶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또 같은 성수기를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