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2만 권을 전부 풀어 다시 조립한 날
2만 권 관 품을 전부 풀어서 다시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조립까지 끝나 출고만 하면 되는 다이어리였습니다. 그런데 작업 도중 외국인 직원 한 명이 인쇄된 그림이 이상하다며 제품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완성된 제품이 2만 권 가까이 있었고 출고 날짜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만들어놓은 제품을 전부 다시 풀기로 했습니다. 현장 직원 70명 가운데 50명 정도가 한 제품에 붙었습니다. 저녁에는 다른 라인까지 작업을 멈추고 재작업에 투입했습니다.
이미 조립한 것을 다시 풀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교체하고, 다시 조립해서 포장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날은 어떻게든 당일 출고를 맞췄습니다. 다이어리 성수기에는 하루 1~2만 권이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두 달 남짓한 성수기가 일 년 성과를 가르는 우리에게 이런 사고 한 번은 단순히 제품 몇 권을 다시 만드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2만 권을 다시 풀면서 나는 샘플 하나, 작업 전 확인 한 번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제대로 느꼈습니다.
다이어리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일 년 열두 달이 똑같이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성수기 두 달 정도입니다. 이때 얼마나 주문을 받고 제대로 생산해서 출고하느냐에 따라 그해 성과가 거의 결정됩니다.
성수기에 들어가면 하루 출고량이 1만 권에서 많게는 2만 권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주문 하나 끝냈다고 쉴 틈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조립하고 다른 쪽에서는 포장하고, 출고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제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소와는 현장 분위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두 달을 계속 그렇게 달릴 수만은 없습니다. 사람도 지칩니다. 그래서 성수기 중간쯤에는 일부러 회식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을 조금 일찍 끝내고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은 출근시간도 조금 늦춰줬습니다.
하루라도 숨을 돌려야 다시 남은 기간을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수기에는 나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출고 날짜는 정해져 있고 하루만 밀려도 다음 작업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하라고 밀어붙일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지치면 확인해야 할 것을 놓치고, 작은 실수가 나중에는 훨씬 큰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샘플 확인과 작업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꼭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그 작은 확인 하나가 빠지면서 이미 완성된 다이어리 2만 권을 다시 풀어야 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바쁜 성수기일수록 내가 가장 조심하는 것이 샘플 확인입니다. 그런데 일이 몰리다 보면 샘플을 제대로 만들어 확인하지 않고 구두로 작업 내용을 전달할 때가 생깁니다. 몇 번을 겪어봤지만 이상하게 이런 작업에서 꼭 문제가 생겼습니다.
말로 설명할 때는 서로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실에서도 그렇게 전달했다고 생각하고 현장에서도 그렇게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품이 나오고 나면 서로 생각했던 것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따지는 것은 이미 늦습니다. 제품은 만들어지고 있고 출고시간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작업이 한창 진행된 뒤에 인쇄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성수기라 작업을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바로 문제가 된 인쇄물을 새로 준비해 교체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현장에서는 한쪽에서 기존 작업을 풀고 다른 쪽에서는 교체할 인쇄물을 준비하면서 출고시간을 맞췄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샘플 하나 만드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샘플을 생략해서 아낀 몇 시간이 나중에는 수십 명이 매달려 다시 작업해야 하는 몇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정이 아무리 급해도 가능하면 실제 작업과 같은 조건으로 먼저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성수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이미 작업은 상당히 진행돼 있었고, 문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사무실 직원도 관리 책임자도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직원 한 명이 그림이 이상하다며 제품을 들고 사무실로 올라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미 완성된 제품이 2만 권 가까이 됐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일부만 손봐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완성된 제품을 전부 다시 풀어서 문제가 된 부분을 교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조립해야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날은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납품 날짜가 정해져 있었고 출고를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현장 직원이 70명 정도였는데 그중 50명 가까이를 이 작업 하나에 투입했습니다. 저녁에는 다른 라인까지 멈추고 가능한 인원을 모두 재작업에 붙였습니다.
완제품을 풀어내는 사람, 문제가 된 부분을 빼는 사람, 새 인쇄물을 넣는 사람, 다시 조립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포장하는 사람까지 작업을 나눴습니다. 이미 한번 끝낸 일을 다시 처음부터 하는 셈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날 출고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늦은 시간까지 전 라인이 붙어서 당일 출고를 맞췄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2만 권을 다시 풀었다는 것보다 50명 가까운 사람이 한 제품에 붙어 움직였던 그 장면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현장을 관리하던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작업하던 외국인 직원이 제품에 들어간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사무실까지 들고 왔습니다. 그 직원이 그냥 지나쳤다면 얼마나 더 작업했을지 모릅니다.
나는 먼저 그 직원을 칭찬했습니다. 이상한 것을 보고 그냥 넘기지 않고 가져온 것은 분명 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칭찬으로만 끝낼 수도 없었습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발견한 것은 잘했지만 처음부터 확인했으면 2만 권을 다시 풀 일까지는 없었을 테니까요. 칭찬하고, 한마디 하고, 또 달래고. 그날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성수기에는 사람도 지치고 정신도 없습니다. 그래도 결국 큰 사고를 막는 것은 현장에서 누군가 이상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그날 다시 느꼈습니다.
그날 문제를 발견했던 외국인 직원은 성수기만 되면 얼굴에서 표정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일이 몰리는 두 달 동안은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농담 삼아 로봇 같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웃을 힘도 없다는 표현이 더 맞았을 겁니다.
처음부터 일을 잘했던 직원은 아니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작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꾸지람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2만 권을 다시 풀었던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한 그림을 발견해 사무실로 가져온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왜 처음 작업할 때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이야기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날 그 직원이 제품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온 것을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꼈고 직접 가져와 확인했습니다. 덕분에 더 늦기 전에 작업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 직원은 계속 우리와 일했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하나씩 배우고, 실수도 줄어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옆에서 계속 확인하지 않아도 자기 몫을 해내는 직원이 됐습니다. 지금은 현장에서 제법 오래된 베테랑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하나씩 알려줘야 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먼저 작업을 살펴보고 이상한 부분을 찾아낼 때도 있습니다.
2만 권을 전부 풀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고보다 제품 하나를 들고 사무실로 올라왔던 그 직원의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는 칭찬도 하고 꾸지람도 했던 직원이 지금은 자기 몫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성수기가 오면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고 가끔은 모두가 로봇처럼 일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오래 같이 일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능숙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함께 겪었던 일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는 다시 겪고 싶지 않지만, 그 사고를 함께 수습했던 사람은 지금도 우리 현장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