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한 권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에 조금이나마 보태보려고 나오신다는 거예요.” 성수기가 되면 우리 현장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는 그저 바쁜 시기에 일손을 보태러 온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사정이 다 달랐습니다. 생활비를 벌려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학비가 필요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용돈을 벌거나 여행비를 마련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병원비 때문에 일을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60대 후반의 노부부가 있습니다. 연세도 있으신 두 분이 함께 일을 나오셨기에 나는 당연히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혀 다른 이유를 들었습니다.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는 데 성금을 내고 싶은데, 그 돈에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두 분이 같이 일을 나오셨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매일 보던 작업장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다이어리를 만들지만, 그 한 권 안에는 종이와 원단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이어리 성수기가 시작되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현장에 하나둘 들어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성수기가 끝날 때까지 같이 일하는 시간제 근무자들입니다. 처음에는 나도 그분들을 그저 바쁜 시기에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는 사람들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매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이곳에 오는 이유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도 있었고, 학생들은 학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한번 가보려고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었고 병원비에 보태려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우리가 만드는 다이어리가 그냥 제품이지만, 그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하루 일당이 되고 생활비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모으는 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60대 후반의 노부부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두 분이 나란히 일을 나오시기에 처음에는 생활비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데 조금이나마 보태려고 일을 나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달라졌습니다. 자기들도 적지 않은 연세인데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일을 하러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월말에 일한 임금을 정산하면서 회사에서도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태드렸습니다.
많은 돈을 드렸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알게 되고 나니 그냥 정해진 임금만 드리고 끝내기에는 내 마음이 그랬습니다. 성수기가 지나면 대부분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갑니다.
이름도 잊어버리고 얼굴도 희미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가끔 다이어리를 보다가 그때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같은 다이어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곳에 나온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달랐습니다.
다이어리를 오래 만들다 보니 나는 완성된 제품을 보면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거쳐온 과정이 먼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처음 제품을 구상하고 초안을 만들 때부터 샘플을 확인하고, 실제 생산을 거쳐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제품을 기획했다고 해서 내 다이어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샘플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원단과 종이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인쇄하고 제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성된 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사람도 있고 창고에서 제품을 정리하고 주문에 맞춰 다시 꺼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뒤에도 끝이 아닙니다. 주문을 받고 거래처와 일정을 맞추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에는 제품을 필요한 곳까지 전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성수기 몇 달 동안만 우리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손도 들어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이어리 한 권은 참 많은 사람을 거쳐갑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을 함께하고, 어떤 사람은 한두 달만 일하고 떠납니다. 잠깐 스쳐간 사람이라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완성된 제품을 보면 먼저 수량과 납품 날짜를 확인했습니다. 몇 개를 만들었는지, 제대로 나왔는지, 약속한 날짜에 보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그것들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끔은 완성된 다이어리 한 권을 보면서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잠깐씩 자기 시간을 보탰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생활비를 벌러 왔던 사람도, 학비를 마련하던 사람도, 병원비가 필요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성금을 마련하려고 우리 현장에 나온 노부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다이어리 한 권은 종이와 원단을 묶어서 만든 제품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한 권이 완성되기까지 스쳐간 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그 안에 같이 들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이어리를 잘 만들고 많이 납품하는 것이 내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래 만들다 보니 제품보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성수기가 끝나면 잠시 함께했던 사람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누군가는 생활비를 가지고 돌아가고, 누군가는 학비를 마련하고, 또 누군가는 자기가 세웠던 작은 계획 하나를 이루었을 겁니다. 그 노부부도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릅니다.
다만 연말에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함께 일하러 나오셨다는 그 말은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다이어리 한 권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기까지 참 많은 손을 거칩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완성된 다이어리를 보면서 제품보다 먼저, 그 한 권에 잠깐씩 자기 시간을 보태고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